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문형진(29·사진) 세계회장이 9일 첫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해 12월 통일교 본부교회의 당회장에 취임한 그는 문선명 총재의 7남이자 13명의 자녀 중 막내다. 그가 ‘통일교의 심장’이라고 부르는 본부교회의 당회장이 되자 “세습이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문선명 총재는 내년에 아흔이다.
그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 “뉴욕의 통일교 수련원에서 생활했습니다. 당시 통일교를 향해 ‘문 총재의 아들·딸을 납치하겠다’는 전화 협박이 많을 때였어요. 그래서 밖에 나갈 때는 늘 경호원이 함께 다녔습니다. 학교에 갈 때도, 학원에 갈 때도 말이죠.”그는 그렇게 ‘통제된 울타리’안에서 성장했다.
그가 19세 때였다. 바로 위의 형(문영진)이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늘 보호받는 생활을 해왔어요. 그런데 충격을 받았죠. ‘누구나 죽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삶에 대해, 존재에 대해 온갖 물음이 올라오기 시작하더군요.” 당시 사고를 당한 형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동양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문 회장은 형의 책장에 꽂힌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동양학과 선불교·유교·도교 등에 대한 책을 읽었죠. 그리고 불교에 심취하게 됐어요.”
문 회장은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다. 학창 시절, 그는 머리를 빡빡 깎고 학교에 다녔다. 승복 같은 한복을 입고, 염주도 걸고 다녔다. “불교의 무상(無常), 무아(無我), 공(空) 사상에 매료됐어요. ‘모든 것은 변한다’는 부처의 가르침은 제게 큰 위안이었어요. 그 변화로 인해 희망이 생기더군요. 대신 통일교 식구들에겐 충격이었죠. 사람들은 저를 곱지 않게 봤어요.” 그때 남방불교의 위파사나 명상수행을 시작, 8년째 계속하고 있다. “요즘도 새벽에 일어나 꼭 두 시간씩 위파사나 수행법으로 명상을 합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가톨릭 수도원에 들어가 묵상 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진짜 ‘통일교 신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목회’는 상상도 안할 때였죠. (총재의) 2세도 고민을 합니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말이죠. 그런데 교회 공식 모임이 있었죠. 저는 평소 옷차림으로 나갔어요. 그런데 아버님께서 꾸짖지 않으셨죠. 오히려 주위 사람에게 ‘얘, 핍박하지 마라’라고 하시대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한국에 가면 저를 데리고 불국사와 해인사·송광사·선운사 등지로 다니셨죠. 저를 인정한 거죠. 그때부터 ‘통일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불교의 법맥도 혈육으로 잇진 않는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문 회장에게 물었다. “교회를 잇는 것은 ‘세속의 피’가 아니라 ‘영성의 피’다.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있다고 보나?”
문 회장은 답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과 종교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확실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아는 게 없구나’란 것이죠. 다만, 제 속에 그런 잠재력이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글·사진=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