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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경제]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인터뷰
등록일 2009-04-29 조회 8435
인생이라는 무대 위의 영원한 지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유니버설발레단이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이 발레단을 25년째 이끌고 있는 문훈숙 단장을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니버설발레단의 공연은 무용수들이 무대에 오르기 5분 전부터 시작된다. 문훈숙 단장이 관객들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는 시간이다. 어쩌면 관객들이 가장 집중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돈키호테 공연이 불경기 속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것도 이처럼 관객과 호흡을 같이하려는 노력 덕분일 것이다.

기자가 찾아간 문 단장의 집무실은 의외로 소박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책상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장의 사진. 주인공은 문 단장의 사별한 남편이다. 검색 사이트에 ‘문훈숙’을 치면 ‘영혼결혼식’이 뜰 정도로 유명해진 사연이어서 이젠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박보희 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의 딸로 미국에서 태어난 박훈숙은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차남과 정혼한 상태에서 불의의 사고로 정혼자를 잃고 스물한 살의 나이에 미망인(?)이 되고 말았다. 사고 후 영혼결혼식을 올려 문 총재의 며느리가 된 그녀는 이 때부터 미국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라 문훈숙으로 살면서 조카 둘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24년 동안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다가 2년 전에 분가해 한남동에서 살고 있어요. 요즘은 6살 된 딸 신월이를 보는 재미에 살아요. 매일 바쁘지만 여가 시간은 모두 신월이한테 투자하죠. 요즘은 숙제를 많이 도와줘요. 그리고 제가 미국에서 오래 살아 영어를 하니까 딸이랑 이야기할 땐 일부러라도 영어를 많이 쓰려고 하죠. 아들 신철이가 어릴 때 그렇게 못해준 게 후회되더군요. 아들은 이미 너무 많이 커버려서 대하는 데 조심스러워요. 이제 고3이고 한창 예민할 나이니까 많이 맞춰주려고 노력하죠. 엄마 마음은 다 똑같은가 봐요.”

시동생과 시숙으로부터 아들과 딸을 입양한 후 그녀는 자신의 성격도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원래 별명이 ‘물가의 수초’일 정도로 여리고 내성적이었는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이 변했어요. 아들 셋을 키우면 엄마가 깡패가 된다고 하죠? 그래서인지 저도 좀 드세진 것 같아요. 발레는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말수가 적은 편이었는데, 자식을 키우고 발레단을 운영하면서 많이 활달해지고 적극적으로 변했죠. 신월이는 발레를 좋아해서 본인이 원하면 발레리나로 키울 생각이에요. 모녀 발레리나가 탄생하게 될 수도 있겠네요.(웃음)”

문 단장도 지금의 신월이만한 나이에 발레에 입문했다. 교회에서 처음 발레를 시작해 스위스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을 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발레단에서 활약한 그녀는 25년 전 유니버설발레단의 주역 무용수이자 단장으로 부임하면서 귀국했다. 목에서 팔까지의 선이 너무 예뻐서 ‘지젤’ 역에 가장 적임이라는 평을 들었고 무대에서 내려온 현재까지도 역대 최고의 ‘지젤’로 꼽히고 있다. 세계 5대 발레단 중 하나인 러시아 ‘키로프 마린스키 발레단’의 객원 주역으로 ‘지젤’을 공연했을 때에는 무려 7번의 커튼 콜을 받은 기록도 가지고 있다. 이런 그녀가 화려했던 무대를 떠나 이제는 발레단 운영에만 매진하게 된 것은 발가락 부상 때문이었다.

“2001년에 부상을 당하고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게 됐을 때, 크게 좌절했던 게 사실이에요. 부상으로 발끝조차 세우기 힘들었을 땐 누군가 내 날개를 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죠. 완전히 마음을 접기까지 3년이 걸리더군요. 본격적으로 발레단 운영을 맡았을 당시 처음엔 모든 게 생소했죠. 직원들과 이야기하는 게 싫을 때도 있었어요. 예술가에서 경영자로 하루아침에 변하기란 쉽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는 7년 전보단 편해진 것 같아요. 정착은 아직 멀었지만, 정착했다고 여기는 순간 내리막길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타이트하게 운영할 계획입니다.”

발레단 운영 이야기를 꺼내자 문 단장의 눈빛이 달라진다. 전례 없는 불황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예술계도 마찬가지다. 유니버설발레단이라고 다르지 않다.

“4월에 예술의전당에서 창단 25주년 기념공연으로 올리는 ‘라 바야데르’는 워낙 대작이기 때문에 엑스트라가 많이 필요하거든요. 아직 저 혼자만의 계획이지만 경영지원팀 등 회계업무나 예술 지원업무를 하는 직원들을 무대에 세우면 어떨까 궁리중이에요. 예술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인 만큼 한번쯤은 무대에 서봐야 함께 일하는 배우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고, 예술을 지원하는 태도가 달라지겠죠. 예술가와 훨씬 잘 교감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인건비가 줄어 경비절감이 되는 것도 무시할 순 없겠죠(웃음).”

문 단장은 공연 이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통해 수익을 꾀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리더십 인사이드 발레’ 라는 프로그램이다. 기업인들을 초청해 30여명이 함께 2시간여 발레 실습을 하고 작품을 직접 해보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발레에서 배울 수 있는 리더십을 함양하는 것이다. ‘창의경영’이 화두인 기업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클래식 발레가 위기를 맞고 있어요. 이제 발레도 변화를 꾀해야 할 때가 온 거죠. 발레단을 운영하면서 주변사람들로부터 ‘발레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공연 중에 해설과 자막을 붙여봤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복잡하지 않도록 자막도 두 줄을 넘지 않도록 했죠. 반응은 대단했어요.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로 발레의 대중화에 힘쓸 생각입니다.”

발레단의 CEO로, 문화계 인사로, 어머니로 바쁘게 살고 있는 그녀에게 10년 후의 모습에 대해 물어봤다.

“10년 후면 누군가에게 발레단을 물려주고 세대교체를 이뤘을 것 같은데요. 오랫동안 자리를 붙들고 있는 것보다 내 힘이 남아있을 때 후배에게 이야기해주고 힘이 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10년 후에 내가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내가 단장할 때보다 공연이 훨씬 좋았다고 느끼면서 객석 뒤에서 조용히 박수를 쳐줄 수 있는 그 날이 언젠간 오겠죠. 그리고 발레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는 것, 변하지 않을 거예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될지라도요.”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문훈숙


1963년 1월 25일 미국 출생.
왕립발레학교, 워싱턴 유니버설 발레학교
1984~現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1982 미국 워싱턴발레단 솔리스트
1984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1995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1996 한국발레협회 프리마발레리나상
1998 한국발레협회 이사
1999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0 모스크바 국립예술대학 무용예술학 명예박사
2004 유니버설문화재단 이사장
2006 USA 국제발레콩쿠르(잭슨 콩쿠르) 심사위원
2007 문훈숙의 브런치발레

글 김지연·사진 이승재 기자 jykim@money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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