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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일보] 문훈숙 단장 인터뷰 보도
등록일 2009-11-02 조회 8050

"저는 木石이 아닌 낭만적인 사람"
남자무용수 눈 못쳐다봐… 공연 前 도망가고 싶었죠
문선명 총재 차남과 '영혼결혼' 영원한 세계를 난 믿어


문훈숙(46)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기자 앞에서 수줍어했다. 한때 너무 부끄러움이 많아 함께 춤추는 남자무용수의 눈을 5초간 응시할 수 없어 애를 먹었다는 그 고백이 떠올랐다.

그런 그녀에게 "여기로 오면서 당신은 실제로 어떨까 궁금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턱을 받치는 시늉을 하며 "전 이렇지요"라고 답했다.

―대부분 세상사람들이 당신에게 궁금한 것은 뭘까요?

"그건 나도 알아요."

그녀는 웃었다. 사무실 벽 뒤로 한 청년의 낡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세간의 상식으로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숨진 아들과 '영혼결혼식'을 올린 지 25주년이 됐다. 그녀가 이끌어가는 유니버설 발레단 창단도 25주년이다.

"강요나 억지로 영혼결혼을 할 수는 없죠. 무조건 부모의 말씀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저도 자유인이고, 어느 나이부터 제가 판단을 하죠.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제가 좋아서 한 거죠."

―짝지어준 대로 결혼해야 하는 '통일교 의식'에 따른 것이 아닌가요?

"종교의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죽고 난 뒤의 영원(永遠)한 세계와 받는 사랑보다 '위(爲)하는' 사랑에 대한 말씀이 늘 옳다고 생각했어요. 맞기 때문에 그 길을 따랐고, 최대한 그렇게 살려고 했지요."

―생전에 남편을 실물로 만난 적이 있었나요?

"그럼요. 만난 적 있고 결혼 얘기도 있었지요. 그러다가 미국서 차 사고가 났죠. 빙판에 미끄러져 대형트럭이 중앙선을 넘어왔어요. 당시 친구 두명이 동승했는데 운전석의 남편만 숨졌어요. 숨진 그해인 1984년 영혼결혼식을 했어요. 내가 21세 때였어요."

―발레는 발가락 끝으로 서고 뒤뚱뒤뚱 오리처럼 걸어요. 신체의 정상적인 행위와 관습에 저항(抵抗)하는 예술입니다.

"비정상적이지요. 저는 그런 발레 속에서 자유를 찾았죠."

―그런데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발레리나로서 어떻게 그런 종교의식을 갈등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지요? 저항하고 거부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알지 못하는 분은 이해하기 어렵죠. 혼란한 세상에 살면서 그게 올바른 길이고 가치관이어서 간 거죠. 그리고 예술이 꼭 종교를 부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종교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예술이 나오죠. 유럽의 대성당에 가면 미켈란젤로 작품이 그려져 있잖아요. 제 선생님은 '나는 극장에 들어설 때마다 성당에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했지요. 무대 자체가 성스러운 곳이죠. 자기 영혼의 내면을 표출하는 장소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정말 훌륭한 공연을 보고 나면 관객들이 깨끗하게 샤워한 뒤의 느낌이 들어야 한다. 그게 예술의 역할이다. 요즘 공연을 보고 나면 집에 가서 다시 샤워하고 싶은 경우가 많다'고도 했죠."

―죽은 뒤의 또 다른 세상에 대한 확신을 정말 갖고 있습니까?

"네. 보지는 않았지만. '영원'이 있다고 저는 믿어요. 인간은 고깃덩어리로만 이뤄져 있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이 세상 끝나면 이 옷을 벗고 영원 속에서 살겠지요."

―결국 현세에서 혼자 사는 것인데, 뭐 특별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독신 생활이야 스님이나 신부, 수녀님도 하니까요.

"사람들은 혼자 살아서 얼마나 힘드냐고들 해요. 하지만 혼자 살아 힘든 것도 있지만, 함께 살아 힘든 것도 있어요. 외로워서 상처가 있다면 힘든 관계로 인해 받는 상처도 있어요. 어려움이 다를 뿐, 혼자 살기 때문에 더 어렵다고 생각지 않아요. 더불어 사는 것은 더 노력이 필요해요. 사랑이란 계속 가꿔야 하거든요. 저는 굉장히 낭만적인 사람이에요. 하늘에 있는 그분을 생각하면서 사랑을 가꾸며 살고 있어요."

―실제 남편과 같이 살아왔다면 이런 말을 쉽게 안 했을 텐데.

"모르죠.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얘기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이상적인 것을 좋아해요."

―그런 분이 자녀를 입양해 키우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녀는 각각 시동생과 시숙으로부터 아들(17)과 딸(7)을 입양해 키우고 있으며, 딸은 발레를 시작했다.

"글쎄요. 부모님이 권했고, 옛날부터 그런 입양이 있었잖아요. 물론 자식들은 속 썩이죠. 그러면서 커가는 것이죠. 부모가 자식을 훈육하지만,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가 더 성숙해진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게 삶이겠지요."

―당신은 한국인 최초로 워싱턴발레단 솔리스트를 했고,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에서 '지젤'을 춤췄습니다. 무대에서 찬사를 받았던 '지젤'은 사랑에 빠지는 아가씨 역(役)이죠?

"발레가 다 사랑을 다루고 있죠. 백조, 로미오 줄리엣, 지젤, 춘향 등이 사랑 아닌 게 없죠."

문훈숙 단장은“무대를 보면 공주에서 평민으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상대 남자무용수나 팬들에게 실제로 남녀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까?

"저도 사람인데 왜 안 느껴봤겠어요. 누가 자기를 좋아하면 왜 못 느끼겠어요. 내가 '저 사람이 좋다' 하는 감정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저는 목석이 아니잖아요, 사람이잖아요. 그렇다고 생활이 문란해지면 안 되잖아요."

―그런 감정을 의지로 이겨냈습니까?

"한 남자와 결혼했지만 그 남자가 인류의 모든 남자를 대신하는 그 사람이니, 그 사람을 사랑하면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나이가 들고 인생 경험이 많아지면 그런 교육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습니까?

"누구는 바뀌겠죠. 사람마다 다르죠. 저는 나이가 들면서도 그게 더 맞다고 생각해요."

―영혼결혼을 하고 난 뒤 유니버설 발레단이 만들어졌죠?

"예."

―그건 영혼결혼의 대가입니까?

"발레단을 만들어줄 테니 영혼결혼 해라? 그건 있을 수 없어요. 돌이켜보면 이렇게 이뤄진 게 저도 신기해요. 아버지(통일교 2인자 박보희)가 리틀엔젤스 예술단을 이끌었잖아요. 미국서 출생해 발레를 시작했는데, 8살 때 한국으로 들어와 리틀엔젤스 단원이 됐고, 그뒤 선화예중에 입학했어요. 한국무용, 노래, 가야금 중에서 전공을 택해야 했어요. 그때 미국서 발레선생님이 오셨어요. 자연스럽게 발레를 전공하게 된 거죠. 그 선생님은 한국서 발레단을 창단하려는 꿈이 있었어요. 발레리나를 키우려면 통상 교육기간이 8년쯤 걸려요. 공교롭게 내가 결혼했던 해와 맞아떨어진 거지요."

―영혼결혼과 발레단 창단은 직접 연결이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인가요?

"전혀 연결이 안 되는 것은 아니고…, 아버님께서 '너는 이제 예술활동에 모든 열정을 바쳐라'고 했지요."

―발레리나 그 자체로서 인정을 받기보다, '종교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니는 대목에서는 속상하지 않나요?

"그런 신앙으로서. 제가 힘들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치관이 세워졌어요. 감사할 부분이지요. 그러나 난 순수한 예술을 했어요. 신영옥 조수미 강수진씨 등 세계적인 예술인이 리틀엔젤스와 선화예술학교 출신들입니다."

―종교 안에 있음으로써 발레 공연을 위한 물질적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현실적으로는 '그룹'에서 지원을 해주시기 때문에 아주 복이 많은 거죠.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자립하는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고 있죠. 제가 춤을 출 때는 발레가 전부였어요.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럴 줄 알았어요. 하지만 2001년 부상으로 은퇴하고 발레단 단장을 맡고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그때 사람들이 거의 발레를 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발레와 뮤지컬을 접목시켜 작품도 올리고, 공연 전에 제가 해설도 합니다. 심지어 자막(字幕)까지 넣었어요. '발레 자체가 언어인데 무슨 자막이냐'는 비판도 있지만, 저는 '친절한 발레'라고 했지요."

―일곱살 때부터 서른아홉살까지 춤을 췄지요. 하지만 은퇴선언도 은퇴공연도 하지 않았지요?

"못 했어요. 안 하고 싶었어요. 너무 서러워서. 그건 더 이상 춤을 안 춘다고 점을 찍는 거잖아요."

―언젠가 한번쯤 복귀할 생각이 있습니까?

"더 이상 춤은 출 수가 없죠. 창단 20주년 때 '마지막으로 서면 어떠냐'고 권유받았어요. 부상으로 쉰 지 3년이 됐을 때라, 한편으로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그러나 발레단 운영을 하면서 춤을 추는 것은 양쪽에 다 최선을 못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관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못 드리고 버릇없이 끝낸 것 같아 마음에 걸려요. 하지만 은퇴공연을 하면 슬플 것 같아요."

―춤을 추다가 안 춰도 금단(禁斷)현상이 있죠?

"음악을 듣고 있으면 절로 춤추고 싶어요. 몸이 움직여요. 객석에 앉아 무대를 보고 있으면 공주에서 평민이 된 느낌이 들어요. 왕관을 벗은…."

―그때 많이 울었겠네요.

"울지는 않았어요.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 언젠가는 겪어야 하는 과정이니까요."

―자신의 은퇴 시점을 어떻게 결정합니까?

"예전만큼 할 수 없다면 무대에 올라가지 말아야 해요.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지 못하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못할 것 같다면요."

―그런 미세한 차이를 누가 압니까?

"자기는 알죠. '하루 쉬면 내가 알고 이틀 쉬면 선생님이 알고 사흘 쉬면 모든 관객이 안다'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단원들은 주 6일을 근무해요. 주 5일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아 놓았어요."

―발레리나로서 다리가 2cm만 더 길었으면 했다고 말했다면서요. 팔다리를 길게 보이기 위해 손톱도 길렀다고요?

"발레리나로서 이상적인 체격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이게(팔을 들어보이며) 짧아요. 얼굴은 '살짝' 크고, 요즘처럼 얼굴이 콩알만 해야 하는데, 허리도 길고. 체격이 안 좋은 사람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라인(몸의 선)이나 표현력을 개발하려고 하지요."

―발레를 한다는 것은 힘들죠?

"중노동이죠. 특히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는 늘 도망가고 싶었죠.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가 한 인터뷰에서 '나의 가장 나쁜 적도 무대 오르기 직전의 순간만은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요."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걸 참아냈습니까?

"좋아하니까요. 일단 막이 올라가면 그 속에 빠져들게 되죠. 발레 맛을 알고 나면 벗어나기 어려워요. 음악과 몸이 일치하는 속에서 굉장한 희열과 기쁨이 있죠. 공연이 끝나면 난 늘 극장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있었어요. 그 충만한 에너지로 인해 바로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당신은 늘 갇혀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저를 아는 분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온실에서 나오라'고. 난 단지 발레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뿐인데, 그게 이해가 안 갔어요. 옛날에는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웠어요."

―성질날 때는 어떻게 합니까?

"걸어요. 그냥 목표지점 없이 걸어요. 발레할 때도 많이 그랬는데, 걸으면서 생각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아니면 여자는 쇼핑이지요. 아이쇼핑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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