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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계일보] 성지를 찾아서 <14> 통일교 부산 ‘범냇골성지’
등록일 2010-08-11 조회 9025
‘자녀 잃은 부모’ 심정 헤아리며
눈물의 기도 올린 ‘눈물 바위’ 유난히 붉은 빛에 눈이 시리다

김홍주(60) 통일교 부산·울산교구장과 함께 수정산(천부산)으로 들어서 ‘본성지’라 불리는 ‘눈물의 바위’에 섰다. 크고 작은 돌들이 촘촘한 가운데 유난히 붉은 빛을 내는 바위다. 김 교구장은 문선명 총재가 59년 전 이곳에서 ‘자녀 잃은 부모(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고, 그런 연유로 후일 ‘눈물의 바위’라 이름 붙여졌다고 소개했다. 눈물 어린 기도 내용은 ‘하나님 해방과 인류 구원’이었다.


◇‘범냇골성지’ 순례차 일본 오사카에서 온 학생들이 천부산 정상 ‘천부산 천주 제1성지’ 기념비 주위로 원을 그린 채 서서 손에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있다.

이곳 주변의 크고 작은 바위들도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세계 40여개국에서 공수돼온 바위들은 동서남북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세계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는 것들이다. 붉은 빛을 내는 커다란 바위는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흔적이 완연했다. ‘복이 찾아 온다’고 해서 이 바위를 찾은 사람들이 조금씩 떼어간 흔적이라고 했다.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 내외가 ‘눈물의 바위’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눈물의 바위’를 지나 산길을 오르자 무더위에 숨이 차왔다. 눈에 보인 바위 이름은 ‘그 바위’다. 산 정상 성지로 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라고 해서 ‘쉬어가는 바위’로도 불리는 곳에서 잠시 바람을 쐬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름다운 부산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문 총재가 한때 노동을 했었다는 제3부두가 멀리 보였다. 같은 자리에서 이제는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게 됐지만, 59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다시 산길을 오르자 ‘천심정’이라는 우물이 나왔다. 김용식(47) 범냇골성지관리소장은 “천심정은 통일교인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샘물”이라고 힘을 주어 말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종교는 달라도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 정상의 길목에 있는 우물은 소중하다. 모두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가 돼 천심정 관리에 심혈을 기울인다.

시원한 물 맛에 기운이 돋아 성큼성큼 산길을 오르니 금세 수정산 정상에 다다랐다. 해발 300m로 낮지만 가파른 길을 오른 뒤 도달한 산 정상이다. 1951년 1월27일 문 총재가 기도를 한 곳이다. 이곳에는 오른쪽으로 ‘천주통일’, 왼쪽으로 ‘조국통일’이라는
글자를 새겨넣은 5m 높이의 돌탑이 서 있다. 이 돌탑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돌탑을 쌓으려는 순례자들의 돌 나르기로 주변 돌이 그야말로 ‘씨’가 말랐다. 최모 권사는 무덤가 돌을 주워 돌탑에 얹으려다 꺼림칙한 생각에 돌을 그냥 버렸다. 그러자 “왜 버리나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라고 간청하는 돌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영적인 환상을 경험한 최모 권사는 결국 이 돌을 다시 주워 돌탑에 얹었다고 한다.

◇‘범냇골가정교회’는 현재는 예배 등 교회 업무가 없는 기념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돌탑 뒤로는 중앙에 태극기를 중심으로 왼쪽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기, 오른쪽에는 통일교 깃발이 펄럭이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군데군데 놓인 벤치를 보자 남북통일과 세계평화의 염원을 담아 간절하게 기도하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기도를 마친 순례자들은 분명 고개를 들어 나무 숲 사이로 멀리 보이는 영도 봉래산과 일본 대마도까지 바라보며 조국통일을 넘어 일본선교, 세계 만방에 평화의 복음 전파를 염원한 59년 전 문 총재의 심정을 체험했을 것이다.

◇수정산(천부산) 정상의 천주통일·조국통일 돌탑.

김 교구장은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인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인이 아니라면 평생 한두 번 갈 수 있을지 모르는 곳이라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며 “마찬가지로 이곳 정상까지 맨발로 걸어 올라오는 외국인들, 그립고 애절한 마음으로 찾는 해외 순례자들의 모습에 매번 큰 은혜를 받는다”는 말로 ‘범냇골성지’의 가치를 설명했다.

왔던 길을 거슬러 내려오면서 이곳에서 미래 청사진을 그렸을 문 총재를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역사를 보면 하산한 세계는 완연하게 다른 세상이었다. 1952년 남한에서 남성 첫 전도자로 이요한 목사가 입교한 이후 기성교회를 이탈해 통일교 ‘식구’가 되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만큼 반대와 핍박도 심해져 문 총재는 1953년 수정동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처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단’이니 ‘사이비’니 하는 말은 문 총재 이름 앞에 붙는
고유명사로 굳어질 대로 굳어진 터였다. ‘수정동 수난시대’를 겪었지만 문 총재는 교리서인 ‘원리원본’ 집필을 마쳤고, 토담집 첫 교회도 설립했다. 문 총재는 남한에서 남녀 첫 제자를 얻은 기쁨을 간직한 채 뜻깊은 부산살이를 접고 1953년 말 서울로 향했다. 문 총재와 그 제자들, 그리고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공식 간판을 내건 이들의 본격 수난시대는 이제 ‘지역구’에서 ‘전국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부산=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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