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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클리경향] 문형진 세계회장 인터뷰 보도
등록일 2010-03-15 조회 8614






[인터뷰] “타종교와 소통 화합시대 열어갈 것”

2010 03/23위클리경향 867호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 ‘책임자’로서의 역할 다짐


"통일교의 ‘후계자’가 아니라 ‘책임자’로서 역할을 다할 생각입니다.”
통일교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통일교의 새 성전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 세계교회본부에서 만난 문선명 총재의 종교적 후계자이자 7남인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은 우리가 지레 짐작하는 종교지도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곱상한 외모, 어눌한 한국말. 미국에서 나고 자란 전형적인 부자집 유학생의 외모에서 풍기는 문 회장과의 대화는 그러나 종교적인 신념을 말할 때면 확신에 찬 지도자의 풍모도 갖추고 있었다.

지난 2월 21일 용산구 한강로에서는 통일교가 야심차게 준비한 세계본부교회 봉헌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문 회장이 본격적인 목회활동을 한지 2년만의 일이다. 이날 봉헌식에는 태고종 총무원장 인공스님과 정치인 등 사회 각계각층 인사 1500여 명이 참석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이날 봉헌식은 문선명 총재의 주관으로 이뤄졌지만 세간의 관심은 문 총재에 이어 목회활동을 책임질 문형진 세계회장에게 쏠렸다. 문 회장은 “새 성전 1층에 불교·이슬람교·천주교·유교 등 종교별로 예배나 법회를 열 수 있는 초종교적 공간을 마련했다”면서 “새 성전은 타 종교·사회와 소통하고 화합하는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통일교의 새 시대를 여는 포부를 밝혔다.

신도 중심의 조직으로 재정비”
통일교는 최근 신도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전환기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목회보다는 사업 쪽에 치중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따라서 문 회장의 세계회장 취임 이후 건립된 성전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국내에서 교회가 그동안 많이 성장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에요.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활동을 많이 한 이유도 있습니다. 신앙적인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아 있고 신도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대해 각성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통일교는 지도자 중심 조직이 아니라 식구(신도) 중심의 조직으로 재정비될 것입니다.”

실제로 문 회장이 취임한 이후 2년 동안 교회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신도 중심으로 교회를 재편한 것이다. “원래 세계회장이 12명의 교구장을 포함한 책임자들을 직접 임명하게 되어 있었지만 제가 취임하고 난 뒤 열심히 종교활동을 하는 신도들에게 투표권을 줬습니다. 통일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현장 분위기를 잘 아는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수장을 뽑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 아닐까요?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부패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나고 자라 공부한 문 회장에게 이런 결정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듯하다.

문 회장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보통의 여느 가정집과는 많이 달랐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문 회장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론자들의 협박은 일상이었습니다. 한국과 같은 조그만 나라에서 온 사람이 메시아라고 설교하면서 교세를 확장해 나가고 성공적인 포교 활동을 이어가자 온갖 협박과 핍박이 뒤따랐습니다.” 문 총재의 아이들을 납치하겠다는 편지뿐만 아니라 손가락을 절단해 보내는 등 테러 위협에 시달렸고, 문 회장 곁에는 항상 경호원이 따라다녀야 했다.

“집 근처에 있던 편의점도 걸어서 못갈 정도였습니다. 1㎞도 채 안되는 거리였지요. 한번은 오기가 발동했어요.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누나랑 개구멍을 내서 한번 나가 보자고 모의해 감시카메라에 테이프를 붙인 뒤 집 앞 나들이에 드디어 성공했어요. 하지만 얼마 못 가 다시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하하!”

집에 폭탄을 설치하겠다, 암살하겠다는 협박도 끊이지 않았다. 자동차를 몰고 집으로 돌진한 사례도 있었고, 경비행기를 이용해 낙하산을 타고 집에 침투를 시도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문 회장은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 오히려 ‘어차피 내 운명은 이렇게 타고났으니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문 회장은 20대에 여러 종교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파 계열의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지만 문 회장이 본격적으로 심취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동양철학과 불교였다. “어렸을 때는 종교 자체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비즈니스와 역사 공부에 관심이 더 많았죠.”

“아버님 후계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백인이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문 회장도 다른 동양 학생들이 그러하듯 사춘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겪었다.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서양의 유명한 사람들이 롤모델로 될 수밖에 없었다.

이즈음 문 회장에게 롤모델로 될 만한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리샤오룽(이소룡)이었다. 고등학생 때 리샤오룽에 빠진 문 회장은 무술 수련은 물론 머리모양과 옷도 리샤오룽과 똑같이 하고 다닌 적이 있다고 한다. 문 회장은 “물론 리샤오룽도 좋았지만 그의 무술이 담고 있는 동양철학, 선불교적 요소가 나의 지적 흥미를 유발해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게 했다”며 웃었다. 문 회장의 부인 김연아 목사(축사장)는 “리샤오룽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시집가서 방에 들어가 봤더니 벽에는 온통 리샤오룽가 출연한 영화 포스터가 시리즈로 가득했다. 얼마나 만지작거렸는지 거의 다 닳았더라”고 거들었다.

이후 불교에도 심취해 머리를 깎고 스님이 입는 가사를 입고 다닌 적도 있지만 문선명 총재는 이런 아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오히려 더 공부해 보라고 격려했다. 심지어 아들의 손을 잡고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해인사에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후 문 회장은 한국의 불교를 접하면서 오히려 통일교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됐다. 아버지 문 총재에게서 진정성과 통일교의 종교적 관용성에 대해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는 사실 아버지의 종교 활동에 대해 의심도 했지만 그런 종교적 관용 때문에 진심으로 통일교 신자가 됐습니다.”

문 회장의 이런 면이 초종교운동을 펼치는 통일교의 목회 총책임자로 적합하다고 판단이 든 것일까. 문 총재는 이후 막내아들인 문 회장에게 목회 활동을 총책임지는 세계교회 회장 자리를 맡겼다. 문 총재가 사실상의 종교적 후계자로 막내아들을 낙점하자 언론은 이 젊은 지도자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보냈다.

문 회장은 자신이 문 총재의 후계자라는 표현에 대해 대단히 조심스러워 한다. “지난번 아버님 구순 때 AP통신이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아버님 후계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메시아는 한 분이니까요. 저는 아버님의 사도이자 메시아의 사명을 이어받아 신도들과 세상과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할 뿐입니다. 즉 이 자리의 책임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문 회장의 세계회장 취임에 대해 ‘세습’이 아니냐는 불편한 시각도 보낸다. 이에 대해 문 회장은 “그런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교회의 모든 재산에 관한 사항은 목회 쪽에서 관여를 못하게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저는 목회 활동을 충실하게 책임지는 역할만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교 하면 떠오르는 합동결혼식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희는 어렸을 적부터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닙니다. 통일교에서 주관하는 합동결혼식은 사실 좀 더 더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국가 간에 의해 생겨난 갈등과 아픔과 한을 끊을 수 있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합동결혼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적을 사랑하라’고 했지만 통일교는‘적과 결혼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축복 결혼식은 역사적인 아픔을 치유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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