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Forbes] 통일교 보도(4월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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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0-04-06 | 조회 | 12466 |
Sons Rise in a Moon Shadow The business magazine Forbes Asia reported in its April 2010 edition: "Reverend Moon's sons are vying, even sparring, to restore a spiritual enterprise." "Obviously, much remains of a movement that had peaked by the time the 1997-98 Asian financial crisis devastated the Tongil Foundation, the core Moon business group in Korea." "But revival, both financial and spiritual, is the mission now. The business empire cum religious movement slowly disintegrated for years. These days Kook-Jin [Moon] and Hyung-Jin [Moon] are working in tandem." Click Here to Read More
레버런 문 그림자 속에서 아들들이 떠오른다
도널드 커크
지난 2월 활기찬 모습으로 90세 생일을 맞은 문선명 목사는 이보다 며칠 앞서 서울에 신축된 통일교 세계본부교회를 두 아들과 함께 개관했다. 장려한 5층 건물에는 대리석이 깔린 로비, 이슬람교의 명각과 함께 그리스도, 석가, 공자 등의 초상화가 있는 포괄적 기도실, 그리고 신도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 등이 있다.
문목사의 한국에 있는 핵심적 기업집단인 통일재단이 지난 1997-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붕괴되기 전에 이미 정점에 이르렀던 이 운동에는 명백히 아직 많은 것이 남아 있다. 메시아가 되려는 문목사와 함께 기도하고 박수 치고 노래하기 위해 신축된 강당을 꽉 메운 사람들은 근대적 아파트 단지에 인접하고 역사적 미군 사령부에 가까운 1급 땅에 위치한 이 1억 달러짜리 프로젝트에 기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당면의 사명은 재정과 영성 양쪽 면에서의 부흥이다. 지난 수년간 이 기업제국 겸 종교운동은 약화되고 있었다. 이제는
한편 한국에서의 이 같은 희미한 첫 움직임과 달리 이 역동적 2인조는 미국에 있는 형(현진)과 조화하지 못하고 있다. 형이 이끄는 UCI는 이들과는 멀어졌고 아버지와도 멀어진 듯하다. 보기에 UCI는 누나 인진(44)씨가 이끄는 교회 미국지부에 자금을 기부하지 않는다.
통일재단의 문 이사장은 신축된 교회로부터 몇 마일 거리에 있는 서울의 마포구에 있는 본사건물에서 업무를 본다. “저스틴”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자라난 그는 보수를 받지 않은 대신 상류 주거지역에서 아내와 자녀 4명과 함께 살 수 있게 하는 생활비를 받으면서 이 직책을 맡고 있으며 겉잡을 없는 자금유출을 막는 일을 위임 받고 있다. 11층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그는 “우리는 먼저 각자의 직무내용과 자격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또 “나는 사람들이 교인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스텝을 검토한다”고 했다.
문 이사장은 새로운 IT 시스템의 도입과 업무흐름의 합리화와 함께 “많은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무엇보다 그는 손실을 내는 회사들을 정리하면서 통일그룹을 34개 회사에서 15회사로 줄이고 레저활동, 아파트 단지, 건설사업 등에 집중하도록 했다. 또 약품, 인삼차, 그리고 맥콜이라는 보리음료를 생산하는 주식회사 일화도 있다. 인삼은 오래 전부터 문목사와 연관성이 깊은데 문목사의 친족이 아닌 현 일화 사장은 1998년 이후 법정관리에서 살아난 뒤 회사를 훌륭하게 경영했다는 이유로 지난 3월 청와대로부터 인정받았다.
통일그룹의 회사 가운데 한국 국내에 석산을 보유하는 일신석재 만이 공개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2006년만해도 큰 손실을 내고 있던 일신은 2009년에는 5000만 달러 가까운 매출에 100만 달러의 이익을 올렸는데 이는 2008년의 이보다 나은 실적에서 떨어진 것이다.
동시에 재단은 서울에서 남동쪽 40마일 지점에 위치한 선문대학교, 문목사와 오래 전부터 가까운
동생 문 세계회장은 문 이사장보다 2개 층 위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위한 사무실을 유지하고 있고 “투데이즈 월드”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통일재단의 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버드 칼리지와 하버드 신학교에서 학위를 따던 시기부터 “션”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세계회장은 아버지의 교회를 맡도록 임명 받았다. 그는 통일교회의 세계회장이면서 평일에는 조직화와 선교에 바쁜 일정을 지내고 일요일에는 신축된 예배당에서 예배를 주관한다. 그는 “나는 기업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면서 “형님이 우리를 많이 도와주고 있다. 재정과 선교는 완전히 별개”라고 했다.
그러나 막내 아들이 그 아버지의 목회자 예복을 입게 된 가운데서도 잔존하는 아들 가운데 연장자인 현진씨의 활동은 혼란과 불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혼란은 이름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 만이 아니고 “Unification Church”라는 명칭을 양쪽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불화는 “프레스턴”으로도 알려진 현진씨가 한국에 있는 종족에서 거리를 두면서 미국뿐만이 아니고 한국에서도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월 서울에서 개최된 일련의 축하행사에서는 프레스턴(41)의 불참이 눈에 띄었다. 1000명 이상이 참석하는 가운데 “궁전” 역내에 위치한 “수련원”에서 열린 문씨 생일잔치 음식은 UCI의 메리어트 호텔이 제공했으나 현진씨 본인은 행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가장 가시적인 자산 가운데 하나인 미국 수도의 워싱턴타임즈지를 쇄신하려고 자기만의 사업투쟁에 몰두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가정의 예민한 부분을 자극하고 있다.
현재는 서울에서 홍보업체를 경영하는 전 교인 마이클 브린 씨는 문씨의 유산은 흐려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주된 테마는 자녀들간의 어느 정도의 다툼인 것 같다. 미국에 있는 사람은 배제됐다. 이 모든 것이 미해결 상태다. 궁전 안에서 모의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문 이사장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창설한 총기회사(별도기사 참조)의 로고가 새겨진 야구모자를 쓰는 등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 통일그룹이 반등하는 내용에 대해 말하기를 원했다. “우리는 서로 시너지를 갖게 되가는 기업들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적어도 움직이는 부품의 위치를 요리저리 바꿀 수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는 2005년에 아버지로부터 책임자로 임명됐다. 그 후 영업손실은 2006년의 3600만 달러로부터 작년에는 560만 달러로 줄어들었고 자산에 대한 부채 비율은 767%에서 194%로 줄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룹의 자산은 총 15억 달러에 이르며 70%는 리조트, 18%는 제조업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수익성이 있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고 문 이사장은 말하고 산속에 있는 광대한 용평리조트에 대해 언급했다. “스키시즌에는 손님이 60만 명에 이른다”고 했다.
이미 좌절한 회사 가운데에는 거대한 공장부문이었던 통일중공업이 있는데 국내외 언론은 이 회사가 한국군을 위해 대포, 포신 등 무기를 생산하기도 했다. 1998년의 또 하나의 희생자였던 통일중공업은 매각돼 명칭도 바뀌었다. 그러나 문 이사장은 그룹이 제조업체로 다시 살아날 것을 지금도 꿈꾼다. 현재로서 그는 통일중공업의 몇 몇 자회사들을 합병해 만들었고 항구도시 부산 근처에 있는 공업밀집지역 창원에서 자동차 부품, 연삭기, 볼스크류 등을 생산하는 TIC라는 훨씬 작은 회사에 기대를 걸고 있다. 문 이사장은 TIC가 장갑차의 자축을 생산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우리는 군대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그는 한다. 상업용 트럭도 목표시장의 하나다.
이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부문에는 일간지 세계일보와 문 이사장의 한 여동생부부가 경영하는 여행사가 있다. 문 이사장이 스스로 공언하는 “중도 우파” 정치철학을 반영하는 신문은 적자로 경영되고 있지만 그는 그것을 계속 운영하기를 원한다. “손익분기점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회사를 여러 차례 구조조정 했고 비용도 줄였지만 지면의 질은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경영책자 집필자 패트릭 렌시오니가 12년 전에 쓴 “CEO의 5대 유혹”이라는 책의 내용을 빌리다. 그 내용은 그다지 혁신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기업의 권위주의적 세계와 원래 통일그룹을 경영했던 사람들 속에서는 충분히 혁명적이다. 통일그룹의 전임 이사장은 멀어진 형 현진씨의 장인이었다.
현진씨가 UCI 사업을 경영하는데 있어 외부의 창조적 자극을 받는 지는 불명하다. 그는 Forbes Asia와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문 이사장은 최근 현진씨와의 사이가 멀어진 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1,2년 동안 [센트럴 시티와 건설회사의] 경영을 도왔다. 그러나 UCI는 그들이 경영하고 싶다고 했다. 이들 회사는 이익이 남지 않은 상태였는데 내가 그것을 크게 성공하게 만들었다”고만 했다.
그렇다면 문 이사장이 더 이상 그들과 관계가 없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냐하면 이 회사들은 서울에 있는 문 이사장 사무실 근처에 있는 반면 형은 1만 마일 떨어져 있다. “그 조직들은 형님이 운영하셨다”고 그는 대답한다. 문 이사장은 자신의 조언의 가치를 현진씨가 인식했다고 믿는다. 적어도 “그는 회사들이 이익을 올리는 기업으로 변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한국에 있는 기업체 총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기자가 추궁하자 문 이사장은 추상적으로 답변했다. “우리 재단의 관점, 우리는 비교적 개방적인 경향이 있다”고 하면서 “UCI는 자기들 나름대로의 경영 스타일이 있다. 우리는 일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고 했다.
대조적으로 통일그룹의 총수는 통일교회와 관련되는 또 한 사람의 기업인과는 빈번히 대화하고 있다. 즉, 피아트의 라이센스를 받아 북한에서 유일하게 자동차를 생산하는 평화자동차의 문 이사장은 그러나 박 사장에 대해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한 매우 인상적인 사람”으로 묘사했다. “박사장은 북한에서 수익을 올린 유일한 기업가”라고 문 이사장은 말했다. 2009년 중반 2008년에 대해 보고된 70만 달러 수익이 그렇다. 더욱 좋은 것은 박 사장은 그 일부를 북한에서 남한에 있는 은행으로 송금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결코 작은 위업이 아니다. 박 사장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지만 그의 성공은 남북 간에 호의를 양성하려는 레버런 문의 꿈을 나타내는 것이다.
결국 “통일”은 “unification”을 의미한다. 다만 그 말이 남북한과 어디까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오랜 교회신도이면서 통일그룹 본사에서 근무하는 티모시 엘더씨는 “그것은 종교적이다. 우리는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홍보회사를 경영하고 남북한에 관한 책도 집필한 전 신도 브린씨는 “통일이란 기독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고 교회신도들이 “한반도 통일에 대해 얼마만큼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분명 레버런 문 자신은 북한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그는 오늘의 북한에서 출생했으며 일본통치에 저항한 후 선교활동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투옥된 뒤 한국전쟁이 시작한 지 몇 개월 후 1950년에 남한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90세 생일 잔치에서 듬뿍 주어진 선물 중에는 친애하는 지도자
며칠 뒤에 있은 교회개관식에서는 호의를 사고 있는 두 아들이 나란히 무대로 올랐다. 이 같은 법과의 충돌에 더해 2008년에는 레버런 문 내외와 그 외 14명이 탑승했던 헬리콥터가 서울에 가까운 산기슭에 불시착하는 바람에 사망할 뻔하는 일이 있었다. 모두 빠져나간 몇 분 뒤에 헬리콥터는 폭발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분들이 인류 모두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언론과는 말하지 않는 부모들은 박물관, 연수원, 성전 등이 갖춰진 그들의 산장(山莊)이 4년 전에 완공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지내고 있으나 뉴욕주 웨스체스터에 오래 전부터 있는 저택은 가정이 계속 유지하고 있다.)
식순에 따라 “특별 말씀”의 차례가 되니까 고령의 문씨는 낯익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때로는 달래고 농담도 하고 기도도 했다. 어느 시점에는 앞쪽 좌석에 앉은 문씨 부인은 신도들이 조국찬가를 한국어로 활기차게 부르도록 인도한다. “글로리 글로리 할렐루야”라는 반복구는 영어로 하고 다수의 손자를 포함한 참석한 모든 가정식구가 함께 합창했다.
그 다음 일요일 예배 후에 만난 문형진 세계회장은 형 프레스턴이 왜 불참했는지에 대해 준비된 답변이 없었다. 다만 “참석할 수 있는 다른 형제자매들이 있었다”고 하면서 “여기서는 우리 둘만이 일하고 있다”고 할 뿐이었다. 통일교회의 가장 깊숙한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불투명하다는 인상이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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