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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계일보] 성지를 찾아서 <16> 통일교 부산 ‘범냇골성지’
등록일 2010-08-05 조회 9315

 

두평도 채 안되는 작은 토담집…59년전 새역사의 출발을 알리다

문총재가 세운 첫 교회이자 전도의 출발지
교리서 '원리원본' 집필 등 교회 기틀 마련

지금으로부터 59년 전인 1951년 1월27일. 6·25전쟁이 한창이던 이때 북한 공산정권의 종교 말살 정책으로 흥남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31세의 문선명 총재가 부산 초량역에 도착한 날이다. 문 총재의 ‘부산 노정’으로 불리는 이때부터 1953년 9월까지는 통일교가 기틀을 마련한 시기다. 부산 노정 출발 당시 교회도 교리도 없었지만, 지금의 통일교는 전 세계 194개국에 선교사를 보낼 정도로 교세가 확장됐다. 통일교에는 성경을 기반으로 한 교리서인 ‘원리강론’이 있다. 이 ‘원리강론’의 모태인 ‘원리원본’이 탄생한 곳이 바로 부산 ‘범냇골성지’다.

◇1951년 문선명 총재가 제자들과 함께 지은 토담집. 현재 이 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범냇골기념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범냇골성지’는 공사중

1951년 1월 27일. 부산에 도착한 문 총재는 집도 절도 없는 처량한 신세였다. 하지만 그는 자녀를 잃어버린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렸고 하나님을 해방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심정으로 교회의 기초를 닦은 범내골은 매년 수만명의 국내외 신자들이 찾는 통일교의 으뜸 성지가 됐다. 전쟁의 폐허에서 상전벽해한 부산, 그 안에 자리한 성지라는 생각에 화려함을 예상했지만 성지 모습은 서민들과 함께한 수수한 흔적 그 자체였다.

동구 범일6동 113번지(1951년 당시 행정구역명은 동구 범4동 1513번지)에 자리한 ‘범냇골기념관’을 중심으로 한 ‘범냇골성지’를 찾았다. 부산 지하철 역명이 범내골역, 모두가 범내골로 부르는 곳이지만, 통일교에서는 이곳을 ‘범냇골성지’로 부른다. ‘범냇골성지’는 ‘안창로 1번길’ 표지판이 붙은 허름한 주택가 골목길 옆 성지안내소에서 시작됐다.

◇‘범냇골성지’ 순례차 일본 오사카에서 온 학생들이 ‘눈물의 바위’를 부여잡은 채 기도를 하고 있다.

성지안내소 유리문에 ‘우물집’이라는 글씨가 크게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1951년 문 총재가 마을 공동우물을 넓혀 팠다는 자리가 있다. 졸졸 물소리만 흐를 뿐, 과거를 떠올릴 만한 단서는 1975년까지 식수로 사용됐다는 설명과 옛 사진뿐이다. 우물집을 나오자 골목길 맞은편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인 건물이 ‘범냇골기념관’(범일전)이다. 지금은 공사로 먼지가 날리는 곳이지만, 건물 안에 놓인 큰 바위와 토담집 터에는 59년 전 새 역사의 출발을 알리는 이야기가 간직돼 있다.

◆‘원리원본’의 탄생과 남한 첫 전도

1951년 5월 어느날 ‘원리강론’의 모태가 된 ‘원리원본’ 집필에 매진하던 문 총재는 그해 8월 산 언덕배기에 두 평도 안 되는 작은 토담집을 짓고 ‘원리원본’ 집필에 박차를 가했다. 거의 매일 철야를 하다시피 해서 몽당연필로 두루마리에 종서로 써 내려간 ‘원리원본’은 결국 1952년 5월10일 탈고를 맞았다. 비 오는 토요일이었다. 

◇교리서 ‘원리강론’의 모태인 ‘원리원본’.

그날 문 총재는 “이제는 전도할 때이니 전도할 성도를 보내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뒤 토담집 앞 우물가로 나갔다. 때마침 문 총재를 찾아온 인근 개신교 범천교회의 강현실 전도사를 만났다. 강 전도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세운 고려신학교 출신의 신심이 강한 미혼 여성이었다. 그는 ‘우물가에 사는 미친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전도하기 위해 토담집을 찾아오던 터였다. 강 전도사는 “하나님, 이상한 청년이 범내골에서 이상한 말씀을 한다는데,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게 해 주시고 아니라면 갈길을 막아 주십시오”라고 일주일 동안 기도를 드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문 총재는 강 전도사를 보고 “하나님은 7년 전부터 전도사님을 많이 사랑하셨습니다”고 말했고, 강 전도사는 7년 전이 복음사업을 위해 일생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결심한 해 임을 상기했다. 두 사람은 한국을 중심한 섭리역사와 재림주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으로 온다는 뜻밖의 신학적 해석 등을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뜻을 펼치는 문 총재에게 감복한 강 전도사는 결국 문 총재의 제자가 됐다. 남한의 첫 제자이자 통일교의 ‘식구’가 된 것이다. 이렇게 허름하기 짝이 없던 이 토담집은 ‘통일교’라는 이름조차 없던 시절 문 총재가 세운 최초의 교회이자, 본격 전도의 출발지가 됐다.

김홍주 통일교 부산·울산교구장(60)과 함께 ‘범냇골기념관’을 뒤로한 채 가파른 골목 오르막길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수정산(천부산)으로 들어서자 본성지로 불리는 ‘눈물의 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산=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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