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세계일보] 성지를 찾아서 <15> 통일교 청파동 前 본부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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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0-08-19 | 조회 | 10635 |
恨과 희망이 공존하는 ‘새 역사의 산실’ “청파동은 푸른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푸른 언덕은 이상을 상징합니다. 피안의 이상세계를 소망하며 노래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푸른 소망을 노래하는 청파동이라는 것입니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靑坡洞) 1가 71-3번지. 통일교 청파동 전 본부교회의 주소다. 지금은 예배 등 일상적 종교활동은 없는 교회다. 6·25 전쟁 직후 폐허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문선명 통일교 총재는 아득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설파했다. 희망을 설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시련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 교회는 그래서 한(恨)과 희망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새 역사의 산실’이라 불리는 곳이다.
◆시련의 세월= 부산 수난시대를 거친 문 총재는 전 본부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1954년 5월1일 서울 성동구 북학동 판잣집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공식 간판을 내걸고 선교를 시작했다.모양새만 교회였을 뿐 허름하고 누추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간직한 문 총재 제자들은 1950년대 지성의 산실인 이화여대와 연세대 앞에서 전도를 시작하면서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된다. 기독교 재단인 두 대학을 중심으로 기성교회를 떠나 새로운 신앙을 찾아 통일교에 입교하는 이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득권을 가진 기성교회에 대한 위협이었다. 결국 당시 이화여대 김활란 총장은 종교사회사업학과의 여성 신학자 김영운 교수를 보내 통일교회와 그들이 믿는 교리상의 맹점을 찾기를 원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문 총재의 새로운 복음을 인정하고 제자가 됐다. 이 일을 계기로 교수와 학생들이 대거 통일교회로 입교하자 급기야 이대는 김 교수를 비롯해 5명의 교수를 해임하는 한편 졸업을 앞둔 학생 5명을 포함해 모두 14명의 학생을 퇴학 처분했다. 연대에서도 교수와 학생들이 퇴학당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단 교회에 다닌다’는 것.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가 침해된 명백한 사례였지만, 완력이 법을 제압하는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기독교 사학 내 종교 자유를 주장하다 퇴학당한 뒤 5년여 법정싸움 끝에 지난 4월 종교자유권을 쟁취한 강의석씨 사례와 비교할 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종교적 도그마에 갇힌 채 힘과 기득권을 가졌으면 ‘정통’, 그렇지 않은 신흥종교는 ‘이단’으로 취급받은 당시의 세태는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나아가 1955년에는 문 총재를 비롯한 핵심 제자들을 경찰이 연행하기에 이르렀다. 흥남 옥살이로 군 징집연령이 지난 문 총재는 병역법위반죄(병역기피)가 적용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수감 3개월 만에 무죄로 풀려났다.
하지만 통일교회에 대한 근거없는 음해와 인신공격은 끊이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힘없는 교회’는 희망을 더 크게 품고, 묵묵히 정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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