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경향신문]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64) 문훈숙 - 공연증후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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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2-05-31 | 조회 | 6668 |
누군가 내게 수많았던 공연 중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워싱턴의 작은 발레 스튜디오에서의 첫 공연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맡은 역할은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도, <지젤>의 여주인공도 아닌 탐스러운 긴 꼬리를 가진(두툼한 털옷 때문에 땀을 흠뻑 적셔야 했던) 다람쥐 역할이었다. 발레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맡은 첫 배역이라 토슈즈를 처음 신을 때처럼 굉장히 흥분되고 설렜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서 살다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연고도 없는 한국 땅으로 온 열 살 무렵, 리틀엔젤스 예술단에 입단한 나는 비록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순회공연의 경험을 통해 무대의 경건함에 대해 남들보다 좀 더 일찍 눈을 뜨긴 했다. 갓 스무 살이 넘은 나에게 주어진 주인공 역할, 무대를 장악하며 작품을 이끌어가야 하는 부담감, 그리고 세간의 주목과 관심은 나로 하여금 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다. 이른바 ‘공연증후군’이라고 해야 될까? 공연 당일 이른 아침부터 이마에 ‘접근금지’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싶을 정도로 말도 없어지고 예민해져만 갔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떤 작품에서든 한 번도 내 공연을 만족해 본 적이 없다. 늘 아쉽고 부족한 것 같아 내 자신을 엄하게 다스렸다. <백조의 호수> 공연 때의 일이다. 1막이 끝난 후 2막 흑조 분장으로 고쳐야 하는데, 그날 나는 분장을 완전히 지운 채 쉬는 시간 내내 울었다. 또 어느 날은 내 공연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공연장이 있는 서초동에서 한남동 집까지 울면서 걸어간 적도 있었다. 나의 이 ‘공연증후군’은 2001년 마지막 무대까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이 ‘공연증후군’을 세계적인 거장인 고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앓았다고 하여 내가 겪었던 그간의 마음고생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으며 큰 위로를 받았다. 파바로티가 누군가. 세계적인 명지휘자 카라얀이 엔리코 카루소 이후 최고의 테너라고 칭송해 마지않던 테너 중의 테너 아니던가. 그런 그도 평생 ‘공연증후군’을 떨쳐내지 못했으며, 심지어 생전에 “내가 겪은 무대공포증을 내 자신의 가장 큰 적에게조차도 경험케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니 ‘공연증후군’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어느새 올해로 은퇴한 지 11년째가 되었고 이제는 후배인 발레단 단원들의 공연을 지도하며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 있다. 특히, 막이 올라가기 전 토슈즈 끈을 매만지며 송진을 슈즈에 묻히는 단원들을 보노라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무대공포증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하며 객석으로 내려간다. 물론 이들도 어느 정도의 ‘공연증후군’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단원들은 우리 세대보다는 그 긴장감을 즐길 줄 아는 것 같다. 요즘 춤추는 무용수들을 보고 있으면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것은 완벽함을 추구하되 무대에 오르는 내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럽게 대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분명한 것은 공연 전의 긴장은 꼭 필요한 에너지이다. 그 긴장감 없이는 공연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맨 뒷자리에 앉아서 공연마다 후배들을 지켜보는 나는 지금도 긴장은 하지만 그들의 춤을 즐기면서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들을 바라보며 가끔 다시 무대에서 저들과 함께 즐기며 춤추고 싶노라고 나지막이 되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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